요즘 보기 힘든 '연탄 불고기', 옛날 할머니가 구워주던 추억의 맛 (송현불고기)

 

세 번의 발걸음, 허름한 노포에서 반듯한 새 건물까지

어떤 맛은 그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더해진다. 송현 불고기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아 세 번의 시도 끝에야 비로소 그 맛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예전 허름하고 쓰러져 갈 듯한 모습의 가게는 기억 속에만 남았다. 이제는 대로변으로 나와 반듯하게 지어 올린 새 건물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 맛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다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왔다는 것은, 그 세월 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무언가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깔끔해진 외관과 달리, 식당 안을 가득 채운 달큰한 간장 양념 냄새와 은은한 연탄향은 이곳의 정체성이 변치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잘 구워진 송현불고기 한 접시


단순함의 미학, 간장 양념 돼지 전지와 연탄불의 만남

송현 불고기의 메뉴는 지극히 단순하다. 돼지고기 앞다리살, 즉 전지를 얇게 썰어 자작한 간장 양념에 재워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평범한 돼지고기가 특별해지는 순간은 바로 연탄불 위로 올라갔을 때다. 주방 한쪽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석쇠와 새빨갛게 타오르는 연탄불이 이 집 맛의 핵심이다.

주문과 동시에 노련한 손길로 석쇠 위에서 구워져 나오는 돼지 불고기는 등장부터 군침을 돌게 한다. 고기 가장자리는 양념이 그을려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육즙을 머금고 있다. 팬이나 일반 숯불에서 굽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오직 연탄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보적인 풍미가 고기 한 점 한 점에 깊숙이 배어있다.

신선한 상추 위에 연탄향 가득한 돼지 불고기


숯불과는 다르다, 연탄향이 선사하는 독보적인 풍미

흔히 고기는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라고 말하지만, 연탄불에 구운 간장 양념 돼지고기는 또 다른 차원의 맛을 선사한다. 이는 대구 칠성시장의 유명한 기사식당 돼지 불고기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특정 세대의 기억과 맞닿아 있는 맛이다. 숯불이 깔끔하고 강한 불향을 입힌다면, 연탄불은 은근한 화력으로 고기를 타지 않게 속까지 익히면서 특유의 구수한 향을 덧입힌다.

이 연탄향이 달콤 짭조름한 간장 양념과 어우러질 때, 맛의 폭발력은 극대화된다. 다른 복잡한 재료나 기교 없이, 오직 좋은 고기와 양념, 그리고 연탄불이라는 세 가지 요소만으로 완성되는 정직하고도 깊은 맛이다.

할머니의 석쇠, 잊혀가는 추억을 소환하는 맛

송현 불고기의 맛은 단순히 혀끝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소환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 한쪽에 연탄 화덕을 피우고 석쇠에 고기를 구워주시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연기를 쐬어가며 먹던 그 맛. 이제는 도시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그 맛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도 사대문 안쪽의 좁은 골목을 지키는 오래된 가게들에서나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이 추억의 맛은,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선다. 그것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과거의 따뜻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시간 여행과도 같다. 삼고초려의 기다림은, 이 맛과 추억을 만나기 위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