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재료의 재해석, 셰프 최현석의 미식 세계
최현석 셰프는 한국 다이닝 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지만, 그의 요리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한식 재료를 활용한 컨템퍼러리 이탈리안'일 것이다. 단순히 이탈리아 요리에 한국 식재료를 추가하는 차원을 넘어, 두 가지 다른 미식 문화의 본질을 꿰뚫고 완벽한 조화를 창조해낸다. 그의 요리는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며, 먹는 이로 하여금 맛의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게 만든다.
최현석 셰프의 요리 여정: 레스토랑의 발자취
그의 요리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거쳐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쿠치나'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다진 그는, '엘본 더 테이블'의 총괄 셰프로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압구정 시절의 엘본 더 테이블은 그의 창의적인 요리가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한 무대였다. 이후 패션과 미식이 공존하는 신사동 가로수길로 이전하면서 그의 요리는 더욱 대담한 색채를 띠며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바로 이 신사동 시절, 그의 요리 스타일에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 당시 SBS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임기학 셰프 등과 함께 이탈리아 현지를 방문해 맛의 본질을 탐구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기술적으로 화려하게 쌓아 올리는 플레이팅에서 벗어나, 식재료 본연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스타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숙과 발전을 거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쵸이닷(Choi.)'을 통해, 그간의 경험과 철학을 집대성한 자신만의 요리를 오롯이 펼쳐내고 있다. '쵸이닷'은 그의 요리 여정의 정점이자, 그의 미식 세계를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창의성의 정점, 잊을 수 없는 셰프 테이스팅 메뉴
필자의 생일날 경험했던 그의 셰프 테이스팅 메뉴는 최현석 셰프의 요리 철학이 집약된 결정체였다. 정해진 메뉴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날 가장 좋은 식재료와 셰프의 영감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구성되는 이 코스는 한 편의 잘 짜인 기승전결 구조의 이야기와 같다. 각 접시가 나올 때마다 셰프의 설명이 곁들여지며, 음식에 담긴 의도와 식재료의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셰프와 손님이 음식이라는 매개체로 깊이 교감하는 예술적 경험에 가깝다.
경계를 허무는 맛의 조화, 한식과 이탈리안의 만남
그의 메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들이 현실이 된다. 예를 들어, 프로슈토의 짠맛과 멜론의 단맛이라는 고전적인 이탈리아 조합 대신, 잘 숙성된 한국의 전통 장(醬)을 이용한 소스가 섬세한 생선 요리에 곁들여진다. 계절 나물을 갈아 만든 페스토는 파스타에 향긋함을 더하고, 한국의 제철 해산물은 이탈리아식 회 무침인 크루도(Crudo)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퓨전이 아니다. 각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과 향을 깊이 이해하고, 이탈리안 조리법이라는 큰 틀 안에서 그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요리를 넘어선 하나의 작품
최현석 셰프의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다. 그의 접시 위에는 한국의 사계절과 자연이 담겨 있으며, 이탈리아 요리의 유서 깊은 기술과 창의적인 현대미술의 감각이 공존한다. 잊을 수 없던 그날의 테이스팅 메뉴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을 넘어, 한 셰프가 자신의 뿌리인 한식과 사랑하는 이탈리안 퀴진을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지를 목격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의 요리는 앞으로 한국의 컨템퍼러리 다이닝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와 같다.